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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김덕호 (18) 영문 한의학 교과서 집필 몰두
    • 작성일2009/11/25 00:00
    • 조회 12,430

    당시에는 88올림픽을 우리가 유치하면서 세계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때였다. 세계 의학계에서도 우리의 전통 한의학을 알고 싶어했다. 영문으로 한의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자료가 절실했지만, 협회나 경희의료원에도 간단한 영문 팸플릿이 있었을 뿐이었다.

    중국은 이미 1970년대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침술을 전 세계에 알렸다. 유럽에서는 중국 의학 붐이 일어나 대부분의 침술 관련 용어가 중국어를 표준으로 하고 있었다. 나는 동료 교수들에게 제안했다.

    “영문으로 한의학 교과서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동양의 공통적인 내용 외에도 한국에서 발전시킨 특유의 침구술과 경희대가 쌓아온 임상적 실험적 데이터를 활용하면 틀림없이 가치가 있을 겁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때 한국을 찾아올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전통 한의학을 소개할 수 있는 천금의 기회입니다.”

    다들 뜻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영문 교과서를 만들면 한국의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들 것이니 세계 선교와도 이어질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향해 꿈을 펼치라는 음성을 주시는 듯했다. 아직 풋내기 교수에 불과했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5∼6년 계획하고 자료를 모아갔다. 영작문도 다시 배웠다. 휴가도 반납하고 연구실에서 먹고 자기를 거듭했다. 동창회나 각종 모임은 아예 포기했다. “잘 나가니까 안 만나준다”는 오해도 받았지만 책을 선보이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84년에는 버스 충돌사고, 85년에는 승용차 충돌사고, 86년에는 하지인대 파열로 입원하는 고통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집필에 매달렸다.

    85년 최연소로 한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박차를 가했다. 86년 아시안게임 이전에 책을 내려고 했다. 경혈의 국제 표준화 작업이 늦어지고 교정도 만만치 않아 결국 해를 넘겼다.

    87년 1월 1일이었다. 대학 본관에서 신년 하례회를 가졌다. 새해에는 서로 목표를 이루고 건강하라는 덕담을 나눴다. 내게 던져지는 덕담이 영문 교과서를 빨리 세상에 내놓으라는 말로 들렸다. 모임을 마치고 낮 12시쯤 김정제 학장 댁에 가기 위해 차를 몰았다. 회기동 캠퍼스를 출발해 종암동을 지나 북악터널로 들어섰다. 왕복 2차선 터널 안은 매연이 가득하고 어두웠다.

    터널 중간쯤 갔을까. 갑자기 속이 메스꺼웠다. 머리가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앞차가 어디쯤 있는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끼익!’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터널 가운데 멈췄다. 한동안 핸들을 꼭 쥐고 멍하니 있었다.

    ‘빵빵∼’ ‘빵빵∼’

    뒤따라 오던 차들이 경적을 울려댔다. 마주 오던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깜박이며 빠른 속도로 스쳐갔다. 나는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었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