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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김덕호 (13) 한의학 공부하며 성경의 진리 확신
    • 작성일2009/11/18 00:00
    • 조회 11,974

    술 취한 남자가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었다. 좀 전에 진료를 받으러 왔던 남자였다. 속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고 했는데, 술에 취해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말도 꼬였다.

    “아저씨, 취한 상태에서는 진료가 어렵습니다. 다음주 토요일에 또 올 테니 그때는 술 드시지 말고 오세요. 죄송합니다.”

    “그∼냥 봐줘봐!”

    몇 번이고 실랑이를 했다. 조용히 가는가 했더니 어느새 뒷문으로 들어와 나를 때린 것이었다. 술김에 화가 단단히 났던 것이다. 옆에 계시던 목사님은 어쩔 줄 몰라하셨다. 우리를 붙잡고는 저녁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밥을 먹으며 난지도 생활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됐다.

    난지도의 쓰레기 더미에서 가끔 금반지나 돈이 나오기도 한다. 어쩌다 돈 될 만한 물건을 찾았다 해도 팔아서 술 마셔 없애고 노름해서 없앤다고 했다. 주민등록마저 말소된 인생, 내일의 희망이 없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사람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때린 그 사람을 보복하려는 주먹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매여 있는 생각과 질병을 때려 눕혀야겠다는 주먹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훗날 거마지역에 마천청소년 수련관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내 마음속에는 신앙과의 갈등도 있었다. 특히 동양철학을 가르쳐 주셨던 노 교수님은 태극 원리를 절대화시켜 마치 종교 교리처럼 강의하셨다. 이분은 무신론적인 유물관에 입각한 절대 자연주의를 주장했다. 한의학도 그런 동양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사고를 정리해 나갔다. 동양철학도 결국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동양인의 관념적인 눈으로 이해하고 분석 종합해 세운 학문일 뿐이다. 인간의 몸 또한 소우주다. 대자연에 오행과 육기가 있듯 인체는 오장육부가 있다. 달의 차고 기움이 여성의 생리에 관련되고, 항진과 억제 호르몬, 면역의 과함과 부족, 양이온과 음이온 등 자연현상은 음양 이론의 근거가 된다. 나는 한의학의 기초 이론 근거인 동양철학과 성경의 만남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진리를 동양철학이 잘 증거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 같은 노력 끝에 나는 졸업시험과 한의사 국가고시를 모두 수석으로 합격했다. 남들은 주말마다 봉사활동에 교회활동으로 바쁘면서 수석졸업을 했으니 머리가 좋아 그런가보다 했지만 사실 머리는 그리 좋지 못했다. 새벽기도가 주는 힘과 바쁜 시간을 알차게 쓰려는 노력 덕분이었다.

    자취를 하면서 그렇게 생활하는 것은 사실 힘들었다. 영양 부족으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고향 어른들은 내게 빨리 결혼하라고 성화였다. 졸업시험과 국가고시를 치르고 난 뒤 성문교회 임숙빈 집사님이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 자리에는 베레모를 쓴 멋쟁이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전형적인 서울 여자였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