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27) 잇단 병원인수… 기도로 결정하면 성공
- 작성일2009/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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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식까지 거창하게 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면 우리 병원의 명예가 하루아침에 떨어질 게 뻔했다. 병원을 짓자니 앞날이 불투명했다.
금요 철야기도 중에 지혜가 생겼다. 병원 신축은 보류하고, 대신 영주 시내에 건물을 임차해 먼저 병원을 열었다.
얼마 뒤 과연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인 IMF가 터졌다. 만약 무리했더라면 우리도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안도할 겨를도 없었다. 서울 오금동의 병원도 타격을 입었다. 의사와 직원을 줄이면 해결될 수 있었지만 다른 방법을 찾았다. 야간진료와 공휴일진료를 신설했다. 이때는 영주의 병원이 오히려 큰힘이 되었다. 할아버지 단골부터 손님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전국에 문 닫는 병원이 속출했다. 우리보다 먼저 송파구에 개원한 문정동 보생한방병원도 경영난에 봉착했다. 병원 하나가 문을 닫으면 주민도 손해고 직원과 환자도 피해다. 기도 끝에 병원을 인수했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 대신 공격적인 병원 경영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나는 병원행사 때 선물로 받은 화초를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몇 달 뒤 화초를 잘 가꾸는지 확인하고, 혹시 말라버리기라도 하면 “풀 한 포기의 생명도 보듬을 수 없다면 고귀한 사람 생명을 치료할 자격이 없다”며 호통을 친다. 그런 경영철학이 조금은 도움이 됐다. 그 뒤 서울 강동구와 대전 등에서도 한방병원을 잇따라 인수했다. 산후조리원, 중국 제약공장에도 투자를 했다.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었다. 신우회 직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기도하고 결정한 것은 성공했고, 인간의 머리로 계산해 벌인 일은 다 실패했습니다.”
그 말이 맞았다. 너무 교만했던 것은 아닌지, 혹 욕심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본다. 지금은 5개의 병원을 중풍 등 성인병과 척추관절 재활, 비만 미용, 청소년 수험생, 부인질환 등으로 특화해 운영하고 있다. 진료 봉사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내가 장학금으로 공부했으니 되돌려주는 차원에서 장학금도 내놓고 있다.
처음 의료법인을 시작했을 때는 50배, 100배 열매를 맺는 밀알 한 알이 되라는 뜻으로 ‘일맥 의료재단’이란 이름을 썼다. 2005년 각 병원의 경영을 통합하면서 ‘인애가(人愛家)’라는 브랜드로 통일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집’이란 뜻으로,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믿음과 섬김의 뜻을 담은 이름이다.
그러는 중에도 매주 목·금·토요일은 영주로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어머니는 내게 평생 영주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속앓이를 했던 일, 한의원을 돕고 농사를 지으며 6남매를 키운 일, 그러면서도 참고 참으며 조용히 기도했던 일을 추억처럼 들려주셨다. 바람 잘 날 없었던 우리 집안이 그나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머니가 주무실 때 몰래 얼굴과 손을 만져 보았다. 이미 앙상해진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내 눈물을 보면 마음 아파하실까봐 울음을 꾹꾹 속으로 삼켜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 뒤 어머니도 그 곁으로 가셨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