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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김덕호 (22) 국제학술대회서 한약재 항암효과 입증
    • 작성일2009/11/30 00:00
    • 조회 12,365

    위기를 맞을 때마다 기도하며 전인순 권사님께 항암 치료와 뜸 치료를 병행했다. 통증이 심할 때에는 침을 놓아드렸다. 1년이 지나자 암세포가 많이 없어지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크게 회복됐다. 양·한방의 장점을 살린 협력 진료가 일구어낸 쾌거였다.

    전 권사님은 웬 만큼 회복된 뒤부터 참사랑교회를 돕겠다고 나섰다. 완곡하게 말렸지만 “이제 다시 태어난 내가 교회 개척하는 두 분께 미력한 힘이라도 보태겠다”며 막무가내였다. 암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된 전 권사님의 간증은 우리 교회에 기도의 불쏘시개가 됐다. 철야 기도가 시작됐고 개척 3년 만에 출석 장년 성도 100명을 넘었다.

    전 권사님은 3년이 지나 완전 회복을 확진 받았다. 치료가 아니라 치유였다. 의학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신앙과 심리, 환경 등을 총동원해 종합적인 회복이 진행됐다는 뜻이다. 권사님은 지금 퇴직한 남편과 함께 강원도 횡성 감천면에서 ‘에덴 관광 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전 권사님에 대한 치유 사례는 학술적으로도 큰 관심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암 정복은 의학계의 최대 과제였다. 양방에서 사용하는 항암 요법은 정상 세포를 망가뜨리는 부작용이 너무 컸다. 전 권사님은 1년 6개월은 양·한방 협진을 했지만 후반에는 한약재와 침술로 관리해 완전 회복 판정을 받은 사례였다.

    마침 영문 한의학 서적을 출간하고 88올림픽을 치르면서 해외 교류 기회가 크게 늘었다. 나는 전 권사님을 비롯한 몇몇 사례를 정리해 한약재의 항암 효과를 세계에 발표하기 위해 준비했다. 진료와 강의, 개척 교회를 섬기는 일을 병행하느라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거르며 논문을 준비했다.

    1991년 8월 선배인 강윤호 교수, 후배 김재규 교수 등 7명이 함께 중국 베이징에 갔다. 중국은 당시 미수교국이자 적성국가여서 홍콩과 광저우를 거쳐 들어갔다. 광저우에서 베이징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중국이 개방돼 의료선교단을 이끌고 들어가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베이징에서 열린 학술대회에는 북한 학자와 조선족 학자도 함께 있었다. 나는 영어로 발표하고 질문에 답했다. 영어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때에는 한자를 써가며 설명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북한 학자가 잇따라 질문을 던졌다. “남조선 한의사들은 향약집성방을 숙지하고 있습네까?” “같은 조선 땅에서 자란 약재라도 남북간 기후 차이 때문에 항암 성분 함량에도 차이가 있지 않겠습네까.”

    “인진호(사철쑥을 말린 약재)는 B형 활동성 간염과 간경변을 경과한 원발성 간암 환자에게 효과적입네까, 아니면 속발성 간암에 더 효과적입네까.”

    남북 대결의식 때문에 나를 골탕을 먹이려는 질문이었다. 임상 경험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너끈히 답변했다. 발표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성공적이었다. 한국의 뛰어난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고 선교의 도구로 삼겠다는 내 꿈이 이뤄지는 것만 같았다.

    정리=김지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