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14) 연애편지 속 아내의 신앙·봉사에 끌려
- 작성일200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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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모를 쓴 그 아가씨는 멋쟁이에 미인이었다. 하지만 경상도 촌놈에 못생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조금 나눠봤는데, 첫 만남이라서 그랬는지 까칠했다. 사실 그 전에 다른 곳에서도 선을 보라는 얘기가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한 여자 후배는 자신의 동생을 만나보라고 몇 번이나 권유했다. 그 집안은 지금도 유명한 재벌 집안으로, 규수는 승마에 골프에 못하는 것이 없는 데다 명문대에 재학 중인 최고의 규수라고 했다. 나와는 생활수준이나 문화나 가정환경이 다 안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다. 베레모 아가씨도 성격이나 취미는 나와 달랐다. 하지만 한신대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연세대 신학대학원에 다닐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던 점이 끌렸다. 사회복지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몇 번 만나 얘기를 해보니 까칠해 보였던 면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자꾸 만나다보니 멋 내는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개성이 있고 세련된 것으로 보였다. 그 무렵 인턴이 됐다. 외출할 시간도 없었다. 대신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보내온 편지를 짬짬이 읽고 또 읽었다. 신앙도 같았고,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꿈도 나와 같았다. 이 여자라면 평생을 함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7년 12월 12일 결혼을 했다. 서울의 새침데기 아가씨가 경상도 산골 집안에 시집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어른들을 깍듯이 섬기고 보증금 200만원짜리 전셋집도 만족해 주었다. 아내는 요즘에도 사회복지 일에 힘쓰고 있다. 내가 영주에서 노인들을 진료할 때에도 함께 자리를 지켜주곤 한다. 영주에서 진료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서울로 올라올 때면, 차 안에서 아내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잘 때도 있다. 한번은 동승한 후배 한의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사람은 이제 이 일을 시작했으니 쉬지 못하고 끝까지 가야 할 것 같아요. 이것이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주신 소명이니까요. 옆에서 보기에는 안쓰럽고 안타깝지만 그냥 이렇게 지켜봐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차는 밤늦어 어두워진 소백산 죽령고개를 굽이굽이 돌아가고 있었다. 흐트러진 내 머리를 한올 한올 다듬어 주는 아내의 손길이 따뜻했다. 내가 인턴으로 들어갈 당시 학과장들은 서로 제자를 삼으려고 했다. 특히 부인과에서 강력하게 나를 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불임 치료에 특효 처방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심 개업하고 싶은 유혹도 느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성이 있는 데다 한의사 국가고시에 수석합격을 했으니 당장 개업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두 내가 생각했던 노인 복지의 꿈과는 거리가 있었다. 새벽마다 기도하며 어떤 길을 선택할지 고민했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