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8) 한의대 입학후 유신 반대하다 유치장행
- 작성일2009/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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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고민하면서 꼭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부담을 갖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은근히 바라기는 하셨겠지만 굳이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돈이나 명예보다 하나님 앞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평생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고 매일 새로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한 끝에 결국 의료의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의료 활동을 통해 사람의 육신을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나눔과 섬김으로 영혼을 살리는 일까지 하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위한 성가 연습 기간은 꼭 시험 기간과 겹쳤다. 공부도 중요했지만 주일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 행사 준비도 빠질 수 없었다. 그러니 1분 1초를 아껴가며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힌 새벽기도의 습관과 주일성수를 위해 시간을 관리해온 경험이 지금까지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잠을 줄여야 할 때도 많았다. 촛불을 켜놓고 공부하다 머리카락을 여러 번 태워먹었다. 촛대가 넘어져 이불까지 불이 붙은 적도 있었다. 호롱불이 넘어져 석유가 흐르면서 큰 불을 낼 뻔도 했다. 물을 퍼올 틈도 없어 몸으로 덮었다가 화상을 입기도 했다.
“내 목숨 주님의 것, 나 하나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자.”
아예 벽에다가 이렇게 써붙여 놓았다. 새벽기도를 할 때에도 이렇게 기도했다.
“불 같이 살게 하소서. 나를 태워 남은 재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향해 드려서 거름이 되게 해 주십시오.”
12월의 예비고사를 앞두고 교회에서 성탄절 칸타타 준비에 들어갔다. 고3이라는 핑계를 대고 빠질까 고민도 했지만 앞으로 긴 시간을 살면서 신앙과 세상 일 중에서 선택할 일이 많을 텐데 처음부터 잘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범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이 기억났다.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하소서. 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나니 마음에 평안이 왔다. 설사 입시에 낙방한다 해도 주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뒤 쉴 겨를도 없이 본고사 준비에 들어갔다. 전기는 서울대 의대, 후기는 경희대 한의대를 선택했다. 내 마음은 내심 한의대에 더 기울어 있었다. 당시 한의대는 경희대뿐이었다. 정원은 40명. 전기 시험에선 수학이 조금 어렵다고 느꼈는데 결국 낙방했다. 후기 시험을 치르던 날은 눈이 많이 왔었다. 시험 당일 청량리 동도교회에서 새벽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기분 좋게 합격했다. 영주 촌놈의 서울 유학생활이 그렇게 시작됐다.
이 글이 국민일보에 실리는 날이 공교롭게도 수학능력시험일 하루 전이다. 40년 전의 나처럼 내일 시험을 치르는 모든 수험생에게도 하나님이 앞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굳게 붙잡기를 당부하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니 시위로 캠퍼스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개헌으로 시끄럽던 시절이었다. 나도 유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에 뛰어들었다. 내 앞에 최루탄이 떨어졌다. 눈물 콧물을 흘렸다. 경찰의 곤봉이 날아왔다. 청량리경찰서에 끌려갔다. 유치장에 갇힌 신세가 됐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